24년 2분기 회고

24년 2분기 회고

24년 상반기가 끝났습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그만큼 바쁘게 살았습니다. 사실 4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4월이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특정 시점을 그 당시 읽었던 책이 무엇이냐로 가늠할 때가 있는데, 4월에 읽었던 책을 떠올려보자면 굉장히 오래 전에 완독했다고 느껴지지만 불과 두 달 전이네요. 5월은 학회 일정과 그에 대한 준비 때문에 바빴고, 4월과 6월은 그냥 연구실에서 할 일 하다보니 바빴습니다. 근데 요즘 삶이 그리 재밌지는 않습니다.

호치민에서 열린 PACIS 학회 일정을 끝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전날 밤 연구실 사람들이 들려줄만한 재밌는 이야기 없냐고 묻더군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정말 딱히 그 사람들에게 들려줄만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저는 대학원 일정 외에는 책을 읽고, 전시회를 가고, 영화 보는 걸 주로 좋아합니다. 인간관계도 저와 비슷한 취미를 가지는 사람들이랑 형성하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바빠서 전시회나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들려줄만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안 생기는 듯 합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읽은 책에 관해 함께 얘기할 사람도 못 만나고 있거든요. 사실 최근에 겐페이 합전이랑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다시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자료를 틈날 때마다 읽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가질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학원생은 본인 연구실을 직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스스로 루틴을 정해서 하루하루를 계획해서 살지 않으면 나태해지기 쉬운 신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는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을 단순한 직장 동료로 바라보지 않았고, 그들과 그보다는 더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인간관계에서 하듯이 연구실 사람들을 정말 잘 대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바라볼 때 느꼈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꾸준히 안부도 묻고, 감사함을 표하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면서 제 일상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제 주변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요.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는 태도와 자기 자신을 미루어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자신에게 베풀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지 말라.”

저 또한 행복하고 존중 받고 싶기 때문에 제 마음으로 피워낸 솔직하고 가식 없는 애정을 주위 사람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진심을 곡해하고, 다른 의도가 있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방어기제가 높아서 그런 건지 그냥 제가 싫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제가 느끼는 좋았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저에게는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책임감이 강하고 다른 사람도 그러길 바랍니다만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어떤 사람하고는 차이가 많이 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관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애초에 간섭할 생각조차 없습니다. 다만, 제가 요구하는 기준치에 대해 자기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고 간주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어서 솔직히 존나 어이가 없습니다. 워크에식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저에게 같지도 않은 본인 기분을 방패 삼아 반박을 하는 건 핀트를 못 잡고 있는 것으로밖에 안 들립니다. 그리고 감사함을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도움을 건네고 친절을 베풀어도 자기가 받은 것을 쉽게 잊는 사람이 있어요. 인연을 맺음으로써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피해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프네요.

저는 제가 정도를 걷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문득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솔직한 제 성향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요. 혹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제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간혹 표현이 서툴러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위하려는 제 마음은 제 속에서만 머물고, 다른 사람이 바라볼 때는 그저 사실관계만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맹자에 이런 구절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저를 자책하였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는데도 그들이 나와 친밀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이 충분했는가를 돌이켜 보고, 사람들을 예로써 대해도 그들이 답례하지 않으면 자신의 공경이 충분했는가를 돌이켜 보라.”

제 생각과 방식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몇 번 있는 일이지만 매번 제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은 같습니다. 최근 들어 자꾸 기분이 태도가 되고, 모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는 말이 있듯이 제가 참고 감정을 삭혀야 하는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저에게는 제삼자의 미온적인 태도도 저를 외롭게 하는 아픔이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는 마치 너 혼자 참고 조용히 있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행동하냐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요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정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예전 글에 썼듯이 저는 사람을 사귈 때 신중합니다. 감정이 격해질 때 혹시나 모진 단어라도 쓸까 조심스러운 사람. 화가 많이 나면 차가워지는 제가 완전히 돌아서서 혹시나 멀어질까 노심초사 하는 사람. 옆에서 함께 웃을 시간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서 시간을 기꺼이 낼 줄 아는 사람. 서로에게 고마웠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저와의 모든 시간과 소중함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저를 아껴주는 사람만 주위에 두고 싶습니다.


상처 입은 멘탈을 차차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밝으면 해가 뜨고, 제 마음을 접으면 달도 지는 법이니 스스로를 다독이는 데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클라이밍을 시작했는데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무언가 몰두할만한 취미를 찾아서 행복해요. 책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에 명상록,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었다, 1984, 군주론을 읽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은 읽으면서 나중에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자체가 짧은 인생 수업이라서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직접 대화하며 고민 상담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인데 가볍게 읽기 좋았습니다. 박물관 구석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서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세 번째 책은 제가 직접 북토크에도 다녀온 강지영 아나운서가 쓴 책입니다. 다만 북토크에 다녀오고 나서 책을 읽었는데, 북토크 가기 전에 읽었다면 더 좋았을 듯 합니다. 기대한 것보다 책 내용이 좋았습니다. 원래 자기개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의 글은 제 마음에 많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책 내용이 마침 강지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고나리자라는 프로그램과 결을 같이 하는데, 읽으면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봤습니다. 1984와 군주론은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널리 읽히는 책은 이유가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군주론의 경우 어릴 때 읽다가 포기했었는데, 지금 와서 읽어보니 재밌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과 비슷한 역사 사례를 떠올리면서 읽다보니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1984는 어렵지 않은 내용과 간결한 문체로 쓰여져있어서 무거운 주제임에도 술술 읽혔습니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고려해보면 작가의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PACIS 학회에서 느낀 점을 간단히 적어보고 싶습니다. PACIS니까 발표 내용은 당연히 대체로 수준 높았습니다. 발표 내용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제 영어 실력이 아쉬웠습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발표자들이 본인의 연구에 많은 생각을 했다는 흔적이 보였습니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질문 수준도 높았습니다. 발표 내용에 대해 미리 읽어보고 질문 거리를 준비한 듯한 사람도 계셨는데, 이러한 분들 덕분에 발표자와 나누는 심도 있는 토론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데이터로 새로운 상황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지, 특정 변수로 민감도 분석을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지 등등 발표자가 질문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생각의 깊이가 보였습니다.

다음 글은 아마 연구 관련 내용일 것 같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