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헌
‘헌터×헌터’ (2011) ⓒ 토가시 요시히로 / 슈에이샤 / NTV / Madhouse
먼저 최근에 본 헌터X헌터와 진격의 거인 후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쓰다보니 길어져서 근황 얘기는 따로 쓸게요.
헌헌은 TA였던 수업의 학생이 추천해서 봤는데요, 재밌었습니다. 작품이 제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에 연재가 시작되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어릴 때 이름을 들어보긴 했지만 기껏해야 2000년대 초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앞선 시기에 나왔다는 사실에 1차 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딘 작품 진행 속도에 2차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개 개미편을 가장 재밌는 에피소드로 꼽던데, 보면서 여러 깊은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저도 개미랑 회장 선거 이야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개미편의 백미는 메르엠의 입체적인 모습 아닐까요? 처음 등장할 때의 언행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던 메르엠이었고, 작품 속에서 묘사된 실제 그의 능력은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기 충분했습니다. 원래 메르엠에게는 무력 이외에 누군가를 평가하는 다른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재능에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주변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시작하는 전개가 좋았습니다. 음 쓰고보니 중2병을 앓고 있던 메르엠이 사춘기를 벗어나서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따지고 보면 태어난지 얼마 안된 어린 아이가 맞으니까 메르엠의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닙니다.
신라의 내물 마립간이 백제 근초고왕에게 백성은 일정한 마음이 없어서 생각나면 오고 싫어지면 가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말하며 귀순한 백성을 송환하는 것을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백성이 스스로 누구를 섬길지 자유로운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데, 메르엠이 개미편 후반에 자신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부하를 보내주면서 너가 원하는 자를 섬겨라고 하는 말을 듣고 저는 내물 마립간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메르엠의 그릇이 커지면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렸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키메라 앤트 토벌대로서 등장한 노부도 저에게 인상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임무 수행 도중 충격을 받아 더 이상 온전한 멘탈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마지막까지 동료들을 도우려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뭔가 베테랑 헌터라서 많은 활약을 기대한 캐릭터가 공포에 쉽게 무너져 이탈하는 모습이 예상 밖이긴 했습니다만 그를 겁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도덕적 우월감이라고 생각해요. 노부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제 역할을 다한 노부의 행동이 곤과 키르아에게 어른이자 선배 헌터의 훌륭한 모범 사례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책임감 측면에서 노부의 안티테제에 있는 인물이 곤의 아버지인 진 프릭스입니다. 아버지로서 기본적인 책임감도 없는 놈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사회에서 거창한 일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헌헌을 보고 나서 가장 진하게 여운을 남기는 캐릭터는 네페르피트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유형의 군신 관계를 찾아볼 수 있는데, 메르엠에 대한 네페르피트의 충성과 헌신은 이상적인 신하의 모습이었습니다. 메르엠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하는 전제 정치를 시행하는데 이러한 정치 체제에서 신하들은 당연히 군주에게 절대적인 헌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헌신과 충성 사이에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충성은 자기가 섬기는 존재가 올바른 길을 걷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 유교 사상에서 신하의 역할은 군주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보다 군주가 잘못된 판단을 할 때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비판하는 것입니다. 샤와프후, 몽투투유피와 달리 네페르피트는 메르엠의 의중을 함부로 넘겨짚지 않았고, 메르엠의 의지를 거역하지 않았고,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가 섬기는 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필요하다면 왕을 위해 진심어린 간언을 하는 네페르피트의 행적은 그녀가 왜 최고의 직속호위군인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회장 선거 에피소드에 대해 얘기하자면 아르카와 나니카 소재가 흥미로웠습니다. 고유 능력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키르아와 아르카의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르카가 키르아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면 나니카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와닿았거든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부족한 면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하며, 그 사람이 옳은 일을 할 거라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심장을 바쳐라
‘진격의 거인’ ⓒ 이사야마 하지메 / 코단샤 / MAPPA
진격의 거인은 헌헌을 마무리하고 나서 정주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좋은 작품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고, 마침 한창 영화관에서 인기 있던 시기라서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4월 말에 처음 보기 시작해서 6월 초에 끝냈습니다. 애니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진격의 거인은 나루토에 버금가는 수작이라고 평가합니다. 소재 자체가 굉장히 참신했고 첫 화부터 강렬하게 인상을 남겨서 계속해서 다음화를 보게 만드는 몰입력이 있었습니다. 애니에 사용된 음악도 너무나도 좋아서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느껴진 메시지 중 하나는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작품을 좋아합니다. 단순히 어느 쪽이 착하고 반대편은 나쁘다라는 곧은 대립보다 등장인물의 복잡한 겉과 속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좋아요. 그리고 진격의 거인의 상징은 조사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자체가 조사병단입니다. 미지에 대한 탐구와 용기가 조사병단이고, 이를 풀어서 묘사하는 과정이 진격의 거인입니다.
스스메 !! 엘빈 스미스는 훌륭한 지휘관입니다. 나폴레옹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휘란 누가 어디서 죽을지 결정하는 것, 희생을 명령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의 후임자인 한지 조에 또한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등장인물 중에서 저와 가장 닮았다는 생각이 든 캐릭터라서 정이 갔습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조사병단의 두뇌를 담당한 엘빈과 한지의 존재는 조사병단의 복이었습니다. 극한 상황은 고정관념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라는 말처럼 연이은 시행착오 속에서 그들이 결실 맺은 실적은 조사병단이 진실에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미카사는 아무래도 작품 초반의 모습이 후반보다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싸우지 않으면 죽음뿐이라고 동기들을 이끄는 모습이 좋았어요. 어차피 도망치려고 해도 어디로 갈 데도 없는 불리한 상황에서 나서서 공격을 이끄는 모습에 등애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존망의 구분은 이 한 싸움에 달려 있다. 어찌 불가능함이 있겠는가? 맞서 싸워서 이기면 살 수도 있다는 낮은 확률에 몸을 던졌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미카사와 함께 투톱을 이뤄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카드였던 리바이의 전투 능력은 리바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장점이지만 저는 그것만큼 리바이의 인간미가 좋았습니다. 작품 내내 조용히 드러나는 그의 다정함과 배려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에렌 예거는 안타깝습니다. 진격의 거인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포 -> 분노 -> 증오 -> 고통의 사이클 속에서 그의 고민과 결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앞서 썼듯이 선악의 구분 없이 승자와 패자만 있는 현실적인 딜레마에서 에렌은 자기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상대를 죽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결정을 내려야 했고, 무거운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었던 에렌의 가혹한 운명이 마음 아팠습니다. 세상은 잔혹합니다.
조사병단의 일원으로서 임하는 마음가짐은 저마다 다르지만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자신과 가족, 그 가족의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조사병단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