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캠 글쓰기 모임 1회

첫 번째 글쓰기 소재로 어떤 걸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쓰기 쉽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 써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소식을 보고 느낀 점을 간단하게 써보려 한다.

지금 사태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짤막하게 평가를 내리자면, 러시아는 정말 싸움을 못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저 21세기의 러일전쟁이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 세 가지를 꼽는다면 명분, 전쟁 준비, 정신력(사기)이라고 생각한다.

명분

먼저 이번 전쟁은 그럴 듯한 명분이 없다. 고대 루스 시절도 아니고 21세기의 러시아가 전세계가 지켜보는 21세기에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선제공격을 가했다. 단지 과거 함께 소련의 구성원이었으며, 친러 세력이 많이 산다는 등 어설픈 이유로 침공했는데, 이는 히틀러가 그저 독일인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했던 일을 상기시킨다.

명분은 일차적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효과가 있다. 명분이 없다면 상대를 납득시킬 수 없다. 예를 들어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그럴 듯한 지각 사유를 제시한다면 상대방이나 제 3자가 나의 사정을 이해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냥 늦게 왔다는 둥 대충 넘어가려 한다면 상대방의 감정이 상할 것이다.

이차적으로 지금 상황처럼 집단 간의 갈등일 때 대표자가 내세우는 명분은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결정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설명하는 수단이 된다. 푸틴은 연설에서 역사 강의를 펼쳤지만 러시아인들은 이번 전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계획과 준비

그 다음으로 러시아의 전쟁 준비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작전 계획과 그 진행 상황이 형편 없다. 우크라이나군이 탈취한 러시아군 작계에 따르면 본래 1월 15일 침공 예정이었고 2월이 되기 전에 공격 상황을 종료하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현재 이미 3월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결과적으로 공세 작전은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과 나치 독일이 겪었던 라스푸티차 고생을 이번에는 러시아군이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의 보급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추측된다. 공세 직후 처음 며칠 동안만 제대로 된 공격이 이루어졌고, 이후로는 각 지역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공격 부대가 돈좌되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 계획대로 1월 15일에 공격이 이루어졌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만, 결과적으로 모든 게 다 꼬여서 진군도, 보급도 문제가 많다.

물론 병참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프로이센의 군제 개혁 당시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장교는 일반적으로 병참을 담당하는 보직에 임명되었다. 경영학이나 산업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오로지 인간의 두뇌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계획을 세세하게 예측 설계하고 통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군사강국이였던 프로이센은 가장 똑똑한 인재에게 병참을 맡겼을 것이다. 다만 이토록 중요한 전쟁 준비와 계획을 러시아군이 제대로 준비한 것 같지 않다.

“군대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말이 끄는 전차 천대에, 가죽으로 만든 수레 천대, 갑옷 입은 병사 10만, 천리길의 식량수송, 즉 안과 밖으로 소비되는 것에 더해서, 빈객들이 쓰는 것, 아교와 옻 등의 재료, 전차와 갑옷의 관리에 매일 천금이 소모해서야 비로소 10만 군대를 일으켜서 통솔할 수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문장인데, 쉽게 풀자면 군대를 먹이고, 입히고, 필요한 장비를 보급하는 데에 매일 돈이 많이 지출되니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대는 배가 불러야 움직인다고 한다. 고수전쟁의 113만 대군, 러시아 원정의 프랑스 대육군과 나치독일군 모두 보급 문제로 망했다. 먹을 게 없어서 유통기한이 5년 지난 전투식량을 먹고 있는 러시아군의 상황이 우습기만 하다.


사기

마지막으로 러시아군의 사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는 사실 처음에 언급한 명분과 관련이 있는데, 전쟁의 정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니 공격하는 입장인 러시아군 내부에서 전쟁 수행 의지가 부족하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대통령과 시장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들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고, 이는 민·관·군이 한 마음으로 러시아를 상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이렇게 스스로 분전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군대의 사기와 정신력에 관해서는 다른 글을 추가로 쓰기 보다 삼국시대 당시의 신라의 예를 들고 싶다. 기록을 살펴보면 오랜 전쟁의 결과로 삼국 모두 상무 정신이 대단했다. 귀족부터 피지배층까지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고, 적과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특히 삼국통일 직전의 신라는 고구려, 백제, 왜(일본) 동맹군에 의해 사실상 전선을 세 개나 유지해야 했다. 여기저기서 번갈아가며 침략하는 적 때문에 상당히 고통받았는데, 당시 기록을 보면 섬찟하고 무서울 정도이다.

<사례 1>
훗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는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바닷길에서 고구려 수군을 만나 죽을 뻔했지만 그를 대신해서 김춘추로 연기한 수행원 덕분에 겨우 살 수 있었다.

<사례 2>
전투에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젊은 시절 김유신은 이런 말을 남기고 적진에 돌격했다.

“내가 듣건대, ‘옷깃을 바루면 갑옷이 바르게 되고 벼리를 당기면 그물이 펴진다’고 하니 내가 그 벼리와 옷깃이 되겠다!”

진골 귀족 김유신은 전군이 지켜보는 앞에서 스스로 먼저 자살 공격에 가까운 돌격을 여러 번 반복하며 군대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사례 3>
백제의 침공에 비령자는 김유신에게서 공격 명령을 받고 나가 싸우다 전사했다. 그 모습을 본 비령자의 아들도 다른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서 전사했고, 그들을 섬기던 노비 합절까지 주인을 따라 전사했다.

<사례 4>
황산벌 전투의 영웅으로 기록된 화랑 관창과 반굴은 둘 다 신분이 높은 귀족이었으며, 김춘추와 김유신의 가까운 친인척 사이다. 특히 관창의 나이는 지금의 중학생 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별동대를 이끌고 임무 수행 도중에 장렬하게 전사했다.

<사례 5>

“나의 아버지가 나를 죽죽(竹竹)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차가운 날씨에도 시들지 말며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는 뜻이다. 어찌 죽음이 두려워 살아 항복하겠는가?”

<사례 6>
611년 가잠성 전투 당시 성주 찬덕은 백제군을 공격을 상대로 분전했지만 마침내 버티는 것도 더 이상 불가능한 지경이 되자

“임금이 나에게 성을 맡겼는데 못 지킨다면, 최소한 죽어서라도 귀신이 되어 백제놈들을 다 죽이겠다”

면서 느티나무에 머리를 박고 자결했다. 그렇게 죽은 찬덕의 아들 해론은 훗날 아버지가 죽은 가잠성 공격에 참여하고, 치열한 전투 와중에

“전에 나의 아버지가 여기에서 숨을 거두셨다. 내가 지금 또한 여기에서 백제인과 더불어 싸우니,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홀로 적진에 돌격해서 싸우다 전사했다.

이외에도 죽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남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기록이 많다. 그리고 귀족들이 기꺼이 먼저 나서서 피를 땅에 적시니, 피지배층도 기꺼이 자신의 남편과 아들을 전선에 내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대를 걸쳐서 전쟁이 이어지니 아버지, 남편, 남자 형제, 아들을 잃는 일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모두에게 난세의 종식을 바라는 마음이 싹텄을 것이고, 삼국통일 직전 고구려와 백제의 내부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신라는 오히려 지배층에서 피지배층까지 일치단결해서 승리를 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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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 캠퍼님
남현님 글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글을 읽다 보니 각자의 문체가 확실히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글은 칼럼을 읽는 것 같았고, 비유와 사례가 많아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목차로 나눠서 글이 진행되는 점도 좋았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사기’ 목차에서 사례에 대한 이야기로 글이 끝나는데요, 글이 끊어진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무리하는 글이 있거나, 신라의 사례를 제시한 다음 러시아 전쟁에 대한 생각을 덧붙여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소연 캠퍼님
안녕하세요, 남현님. 최근에 접한 텍스트와 사뭇 다른 주제라 더 재미있고 인상깊었던 글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사회랑 국사를 정말 좋아했는데 쓰신 글 읽으면서 아는 인물이나 지역, 사건이 나오면 반갑기도 한 반면 ‘뭐지?’싶은게 너무 많아서 읽으면서 부끄러웠네요ㅠㅠ 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통찰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남현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세가지 항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갑자기 끝난 감이 있어서 아쉬웠는데요. 기술적인 내용도 좋지만 이런 종류의 글 앞으로도 많이 남겨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미소짓는_얼굴:

이인서 캠퍼님
안녕하세요 남현님.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먼저, 적절한 예시를 들어 설명하셔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쉬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례들을 떠올리셨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아마 정말 많은 책을 읽으셨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셔서 가능한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저로서는 가지지 못한 부분이라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통찰력이 뛰어나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분석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신 것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다만 글이 중간에 멈추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후 러시아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에 대한 남현님의 생각이 더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도 궁금하고, 글을 작성하신지 1주일이 지난 이 시점에서의 남현님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주제를 다루셔서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소짓는_얼굴:

한현진 캠퍼님
안녕하세요! 남현님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첫 부분에 언급해주신 대로 세가지 문제점에 대해 글을 나누어서 더 읽기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 상황에 대해서 작성하셨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전쟁의 문제에 대해서 작성해주셔서 새로웠어요. 제가 전쟁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몰라서 덕분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에는 사기 부분 뒤에 글의 마무리가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명분의 기능, 사례 부분이 특히 좋았습니다. 재밌게 잘 보았고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booduck_happy:

허치영 캠퍼님
안녕하세요 남현님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블로그글은 공부하려고 찾아 읽는 것 밖에 없었는데 이런 전쟁과 관련된 글은 처음읽어봐서 되게 새로웠네요. 예전 사례들과 비교하고 남현님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적으신 부분이 참 인상깊은 글이였습니다. 딱 하나 아쉬웠던 부분은 글의 마무리가 조금 부족하지않았나 생각해요. 마지막 부분에 남현님의 총합된 생각이 있었다면 정말 완벽한 글이였을 것 같네요. 이러한 종류의 글 앞으로도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ㅎㅎ

김성규 캠퍼님
안녕하세요! 저도 남현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다른 캠퍼님들의 글을 보다 남현님의 색다른 주제를 접하니, 상당히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깜짝_놀란: 글 작성방식도 무척 좋았는데요, 저는 ‘사기’ 부분에 인용문구로 각 사례를 구분한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과거 사례와 지금의 주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읽다보니 문제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읽기 편하더라구요:+1: 피드백을 쓰는 지금도 제 머릿속엔 ‘러시아는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걸 보니 남현님께서 글에 몰입되게끔 잘 써주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작성하고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김은기 캠퍼님
남현님 작성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주제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저 역시 관심이 많은 주제였기 때문에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문장이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져 읽기에 좋았고 문단 역시 분리가 잘 되어 있어 형식적으로 좋은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먼저 문체가 다루는 내용에 비해 많이 가볍다는 것입니다. 내용 자체가 ‘병참’, ‘라스푸티차 고생’ 등 독자가 생소해 할 수 있는 단어로 이루어진 내용인 것에 비해 문체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저 21세기의 러일전쟁이다.”와 같이 조금 가벼운 느낌이 강했습니다.

두번째는 글을 작성하실 때 “독자들은 어떻게 느낄까?” 조금 더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용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적절한 사진을 첨부한다면 더욱 가독성이 높은 좋은 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는 마무리 부분이 없어서 한 편의 글로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어야 하듯이, 문장에도 서론이 있으면 결론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의견을 종합하는 식이나 갈무리하는 식의 자신의 내용을 담아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재밌는 글감과 내용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한나연 캠퍼님
안녕하세요 남현님! 글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제가 읽었던 글과는 다른 주제라 신선했습니다. 부캠을 시작하고 나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줄어든 저와는 달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남현님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푸틴의 계획과는 점점 멀어지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남현님의 생각도 들어가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