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분기 회고

값지게 살아야 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4월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한편으로는 잘 살고 있다는 의미라고 나를 다독여본다. 할 게 많아서 정신없이 매일매일 치고 달려나아가고 있고, 대학원생이라면 이러한 삶이 정상이지 않을까.

2024년의 시작은 홋카이도였다. 언젠가 겨울의 홋카이도를 가고 싶다라는 바람이 있었는데, 우연히 삿포로에서 학회가 있어서 다녀왔다. 뜻밖의 여정이었다. 작년 10월 31일 갈만한 학회를 찾고 있던 시기에 삿포로 학회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논문 제출 마감이 11월 1일이었다. 연락을 받은 시각이 23시가 다 된 늦은 밤이어서 1시간만에 급하게 당시 쓰고 있던 글을 번역하고 양식에 맞게 옮겨서 제출하였다. 마감 기한이 연장되긴 했지만 생각치도 못한 기회를 잡아서 아름다운 설경 추억을 만들고 왔다. 음식은 입맛에 맞았고 운이 좋아서 머물었던 5박 6일 동안 날씨도 좋았다.

일본에 다녀오고 1월과 2월의 기억은 특별한 게 많이 없었다. 산자부 프로젝트랑 연구를 마무리 하는 수정 작업으로 하루를 보냈다. 솔직히 지루하고 재미없던 시기였다. 산자부 프로젝트는 내가 원하는대로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았고, 논문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다듬고 다듬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즐거움이 있다면 연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배운 게 많았다는 것이다. 논문은 내가 평소 쓰는 글과 다르다. 글에 되도록 빈틈이 없어야 하고 정확한 글이어야만 한다. 물론 내가 지금껏 블로그에 글을 대충 썼다는 말이 아니다. 혹여 잘못된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맞춤법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노력하였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보면 이상한 부분이 가끔 보이긴 하더라. 방금 알아차린 사실인데 이번 글은 -습니다체를 쓰지 않고 있다. 블로그에 글 쓸 때마다 매번 문체가 달라진다. 그날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3월은 기분이 좋았다. 개강해서 조교업무가 다시 생기긴 했어도 일은 즐거우니 괜찮았다. 연구도 마무리했고, 다시 책 읽을 시간이 생겨서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새학기에 새로운 사람들을 여럿 알게 되어서 앞으로 그들과 함께 할 시간이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매화랑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몽글몽글 행복한 기분이 든다.

이제 다음 분기에 실천할 내용을 적어보겠다. 먼저 독서. 최근 몇 달 간 바쁘긴 했지만 책을 한 권밖에 읽지 못했다. 에밀리 블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었는데 한 편의 주말 드라마를 감상한 느낌이다. 이 책이 작가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등장인물에게서 이야기를 전해듣는 방식의 소설 전개 방식이 좋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등장인물 간의 대화가 상당히 직설적이고 솔직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느낀 기분과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를 구체적이고 진실되게 말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책 제목 그대로 폭풍 같이 등장인물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폭풍이 어느새 소멸되듯이 빠르지만 부드럽게 소설이 끝맺는 흐름에서 작가의 천재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날씨 따뜻해졌으니 러닝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시회도 다시 시간 나는대로 좋은 게 있으면 다녀오고 싶다. 지난 달 31일에 강지영 아나운서의 북토크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녀왔는데 전시회 간 것처럼 설레었고 느낀 바가 있었다. 연구실에 매일 있기 보다 가끔씩은 밖을 돌아다니면서 색다른 경험을 가져보려고 한다. 같이 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마지막으로 본분에 맞게 연구도 많이 하고 싶다. 물론 내 의지와 달리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속상하다. 퀀텀 점프 언제 할 수 있을까?

북토크에 다녀와서 새로운 마음가짐이 생겼다. 이번 시즌의 자세는 “Fear not”이다. 충분히 생각하고 용감하게 해보는 거다. 생각이 너무 길어지면 용기는 사라진다.